건륭 황제가 직접 만든 공적비
푸캉안 공적비는 매우 유명하며, 석비를 돌거북이 위에 세워 상당히 장관입니다. 중국에서는 돌거북이를 받침대로 삼은 비석을 곳곳에서 볼 수 있지만 타이완에서는 보기 드문데, 오직 타이난 등지에서만 몇 개 남아 있을 정도로 희귀하고 드물 뿐 아니라, 이 비석이 타이완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 린솽원의 난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주뤄현은 이 사건으로 인해 황제에 의해 「자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았고, 이는 타이완 지명 중에서 유일하게 황제가 친히 내린 특별한 사례였습니다.
건륭 51년(1786) 린솽원은 장화에서 군사 봉기를 일으켜 장화지현을 죽인 후, 남하하여 주뤄(자이)현 및 펑산현을 함락시키자 일시에 타이완 전체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타이완 총병 차이다지는 용감하게 앞장서 전투에 임해 타이난 부성을 지켰을 뿐 아니라 건륭 52년(1787) 정월 주뤄현성을 수복하였습니다. 하지만, 린솽원 부대가 재정비를 거쳐 계속해서 주뤄성을 포위 공격함에 따라 전투는 치열했고 정세는 위태로웠습니다.
같은 해 10월 건륭은 전투에서 공을 세운 푸캉안 장군을 파견하여 타이완을 추가 지원하였고, 그 결과 린솽원을 물리치고 주뤄성의 포위를 풀었습니다. 그후 용감하게 성을 지킨 주뤄성 군인과 민간인의 공로를 치하하여 특별히 지명을 자이로 변경했습니다. 건륭 53년(1788) 황제가 직접 만든 공적비와 거북이 받침 10개를 하사하여 푸캉안의 공적을 표창하였는데, 그중 4개는 전각 만주 문자, 4개는 전각 한문, 2개는 한문과 만주 문자 합각이며, 한문과 만주 문자가 합각된 공적비의 하나는 자이에 세우고, 나머지 9개는 타이난 부성에 세워졌습니다.
공적비의 상서로움을 상징하는 거북이 받침은 샤먼에서 조각된 후 타이난 부성 항구로 운송되었는데, 하역할 때 그중 거북이 받침 하나를 실수로 항구에 떨어뜨리는 바람에 다른 사암으로 모조된 것을 자이로 보냈습니다. 비석 받침대는 여러 차례 이전된 후 마침내 지금의 터에 자리잡았습니다. (항구에 떨어진 거북이 받침은 1911년 타이난 어민에 의해 건져져 타이난 바오안궁에 봉안되었습니다).
푸캉안 공적비 정보
크기 : 비석 높이 310cm, 너비 143cm
형태 : 황제 제작 액 조각, 쌍용 장식, 테두리에 용 무늬 장식, 만주 문자와 한문 합벽
명소 조성 : 청나라 건륭 53년(1788년)